불교문화대학 철야정진법회가 있어 관음사에 갔다왔다.
자비와 복은 어디에 있는가?
법문을 들으며 나름대로.....
종교를 떠나 어느 곳에든 사랑 ,자비, 복이 있다.
교회 안, 성당, 점쟁이 집...
산, 바다, 집, 화장실 까지도..
희노애락 은 어디에든 다있다.
자비와 복
자신이 생각하고 받아들이기에 따라 복을 쌓고 자비를 주고받으며
세상을 살아간다.
살아가면서 모든 것 을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받아들이자.
왜 나한테만 이런 일 들이..
왜 나만 복이 없을까...
저곳은 교회니까.
점쟁이 이니까.
저 사람은 그렇고..
저곳은 별볼일 없고..
혼자미리 생각하고 판단을 하면 할수록 그것은 자비와 복에서 멀어져 간다.
긍정적인 마음으로 복을 쌓고 자비를 베풀다 보면
그것이 복이요 자비이다.
그렇게 살다보면 그것이 즐거운 인생이다.
세상사 모든 일 마음먹기에 따라 달라진다 했다.
어렵지만 그리 살자.
2011.4.24
불교16기 철야정진법회(4.23~24)
관음사는 한라산 650미터 지점에 위치한 절로 대한불교조계종 제23교구 본사이다.
이 지역 사찰 30여 곳을 관장하는 제주 불교의 중심지인 셈이다.
구전에 따르면 고려 문종 임금(재위 1046~1083)때 창건되었다는 설이 있고,
조선시대에도 존재했던 사찰이라는 기록이 남아있다.
그러다 유교를 국가 통치 이념으로 삼았던 조선의 지배자들이
1702년 제주 지역 사찰 전부를 폐사 시키면서 관음사도 함께 사라지게 되었다.
그러던 관음사가 지금과 같은 사찰 규모를 갖추고
새롭게 창건된 것은 1908년 안봉려관 스님에 의해서였다.
스님은 지역민들의 반대에 부닥치는어려움 속에서도
해월굴에 머문 채 3년간 관음기도를 드리며 법당과 요사를 완공하기에 이른다.
뒤이어 통영 용화사 등지에서 불상과 탱화를 모셔와
여법한 사찰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절의 외형을 갖추는 불사가 일단락되자
제주불교협회, 제주불교부인회, 제주불교소년단,
그리고 중등 교육기관인 중학 강습소등을 설치해
내실있는 사찰로 거듭나기에 이른다.
또 제주 중심지인 중앙로에 시내 포교당인 대각사를 세워
제주 도민과 함께 호흡하는 적극적인 포교활동을 펼친다.
오랜 시간 맥이 끓겼던 제주의 불교가 관음사를 중심으로 살아가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1939년 불이 나 대웅전과 승방 등이 모두 불타 없어지면서
관음사도 질곡에 찬 역사의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들고 만다.
1948년 제주 4·3 항쟁이 그것이었다.
이 항쟁은 1948년부터 1954년 9월까지 제주도에서 일어난
우리 국군과 남로당 세력 사이에 벌어진 유혈충돌 사건으로
수만명의 사람들이 죽어갔다.
두 세력간의 전투가 벌어지는 틈바구니 속에서 관음사도 안전할 수 없었고,
결국 우리 국군에 의해 불 태워지는 비극을 맞이하게 되었다.
폐사지로 버려졌던 관음사가 지금의 사격을 갖춘 것은 100여 년 안팎의 일이다.
대웅전을 시작으로 선방, 영산전, 해월각, 사천왕문, 일주문, 종각 등의
차근차근 제 모습을 되찾은 것이다.
지난해 역사를 밟아온 관음사,
그것은 비운의 섬 제주가 걸어온 슬픈 역사와 닮은 꼴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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