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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낙서장/ 살아가는 일상낙서

꽃망울 들을 바라본다.

 

 난 전시회 일정에 맞추어 꽃을 피우기 위하여

오늘 난 정리를 하며 꽃망울 들을 바라본다.

예전같이 많은 꽃들이 달지는 않았지만 20 화분을 챙겨 방으로 들여 놓는다.

 

난을 들여 놓다 올해 전시회에서 선을 보일 난(수채색설화)을 바라보자니

부산에 계시는 김철시인님이 생각난다.

 예전 모 난사이트에 아래난(수채색설화)을 선 보였더니 무척이나 마음에 드신 모양이다.

 

마침 난을 분리하여 배양에 들어간 터인데 상태가 안좋아 신경을 많이 쓰고 있던 때였다.

너무 좋아하시는 난이기에 종자라도 보내드릴려고 생각하고 연락을 하였는데 무척 기뻐하셨다.

그런데 난의 상태관계로 차일피일 미루다 보니 6개월이 지나가 버렸다.

 

보내드린다고 약속을 하였는데 상태가 안좋아 무척 고심을 했었다.

6개월이 지났지만  상태가 조금 호전된 난을 보내드렸더니 고맙다는 말씀과 함께 안부를 전하는 인연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 많은 안부와 통화를 한것도 아닌데 시인이지만 애란인 으로서 생각하시는 그 모습이 참 좋다.

 

 

색설수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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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잡지 <난세계>1월호 <난혜난담(蘭蕙蘭談)>

김철  시인/번역가


지난 11월 20일 동서들과 처남들과 함께 장모님을 모시고 부산 근교에 있는 대운산(大雲山) 자연휴양림에 가서 1박2일을 보내고 왔다. 대운산은 대우자동차[GM Korea]에 다니며 직장 난우회 <차란회(車蘭會)>를 만들어 가끔씩 회사 버스로 산행을 가곤 했던 곳인데, <자작나무>라는 이름의 아담한 방갈로에서 1박2일을 하며 새삼 느낀 점은 산 자체의 품격이 양반스럽다는 점이었다.

필자가 살고 있는 부산 동래구 사직동(社稷洞) 아파트 뒤에도 바로 금정산(金井山) 꼬리에 해당하는 쇠미산(釗尾山)이 있지만 산림(山林)이 그리 수려하지 못한 데다 사람들이 워낙 많이 오르내려서 그런지 산의 정기(精氣) 같은 것이 뿜어져 나오지는 않았는데 대운산은 그 자체가 일종의 보약(補藥)이라 할 수 있는 기운으로 우리를 감싸 주는 듯했다.

밤에는 밖에 나와서 가로등을 손으로 가리고 별을 올려다보았다. 어릴 때부터 별만 보면 가슴이 답답해지고 말로는 표현할 수 없던 절망감을 또다시 느끼며 우주의 신비 앞에 필자는 두 무릎을 꿇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 세상 그 누구도 그 어떤 철학자나 과학자도 아는 척은 할 수 있어도 결코 안다고 장담을 할 수 없는 우주의 정체! 필자는 자신을 잊은 채 망연히 하늘을 바라만 보고 있을 뿐이었다.
이 답답함 내지 절망감은 2002년도에 쓴 필자의 졸시 <나무>에 그런대로 나타나 있다 하겠다.

조선의 선각자 중 한 분인 조소앙(趙素昻, 1887-1958)은 생전에 조선두루마기 차림으로 프랑스에 가서 당대의 유명한 철학자 앙리 루이 베르그송(Henri-Louis Bergson, 1859-1941)을 방문, 대뜸 이렇게 질문을 던졌다.

“이 우주의 끝이 어디메뇨?”
천하의 철학자라 해도 어찌 이 물음에 답을 할 수 있으리오. 어안이 벙벙해서 파이프만 뻑뻑 빨고 있는 베르그송에게 조소앙이 재차 물었다.

“그러면 시간이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아느뇨?”
대답할 말을 잃고 이 무례한(?) 불의의 방문객에 놀라 눈만 멀뚱멀뚱하고 잇는 베르그송에게 조소앙은,
“베르그송도 별 수 없구만……”
이라는 한마디를 남기고 돌아섰다고 하는데 과연 신(神) 외의 그 누가 우주와 시간에 대해 명쾌히 답을 할 수가 있을 것인가.

시간은 유수(流水) 같다느니, 화살 같다느니 하지만 더디 갈 때는 한없이 더딘 것이 시간이다.

필자는 하루에 꼭 30분씩 운동을 한다. 걷는 운동이 좋다고는 하나 준비하는 것이 번거로워 집에서 저녁 식사 후 훌라후프를 돌리고 틈틈이 체조를 한다. 그런데 그 30분이 그렇게도 안 가는 것이다. 지루해서 뉴스나 좋아하는 TV 프로를 보면서 하는데, <지켜보고 있는 냄비는 끓지 않는다.(A watched pot never boils.)>라는 속담처럼, 시계를 보면 시간이 안 가고, 시간을 잊은 채 무아지경(無我之境)에 빠져 하다 보면 어느 새 30분이 다 돼 간다. 그리고 또 희한한 것은 마지막 5분은 시계가 정지해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시간이 소걸음을 한다는 것이다.

필자는 하안거(夏安居)나 동안거(冬安居) 또는 관음기도주간(觀音祈禱週間)에 아내를 따라 절에 가서 몇 시간에 걸쳐 기도를 한다. 명색이 부산불교문인협회 자문위원이고 신심(信心)이 그리 약한 것도 아닌데 <관세음보살>을 끊임없이 외우는 그 시간이 어쩌면 그렇게도 안 가는지 모를 일인 것이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 가만히 생각해 보면 137억년이라는 엄청난 우주의 수명도 순식간에 지나갔는데 몇 시간, 몇 십 분을 가지고 시간을 논하는 자체가 소인배(小人輩)나 바보가 할 짓거리가 아닌가 생각되기도 한다.

남자는 돈을 벌어 아내와 자식들에게 걱정을 안 끼쳐야 한다는 소신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워낙 이재(理財)에 어두워 돈을 제대로 벌지 못한 자신을 두고 바보 이외의 아무것도 아니라고 후회를 하면서 인생을 다시 시작해 보고 싶어도 막상 돌이킬 수 없는 것이 시간이다.

필자가 편집과 발행 책임을 맡아 있던 부산 동명대학교(東明大學校)의 영자신문(英字新聞) <The Tongmyong Times>[No.6, 2001년 11월 24일(금)] 1면에, 필자가 직접 이메일을 보내 <Future Science(미래의 과학)>이라는 칼럼 원고를 받아 실은 바 있는 영국의 우주물리학자 스티븐 호킹(Stephen W. Hawking, 1942-)은 최근 외계인은 존재하며 시간 여행도 이론적으로 가능하다고 인정했다는데 정말 생각하면 할수록 머리가 깨어질 것만 같은 것이 시간이라는 명제(命題)라 하겠다.

여하튼 자의든 타의든, 알게든 모르게든 시간은 흘러가 난에 빠져 보낸 세월이 30여년이 넘었다. 그 사이 경제적인 사정도 있었지만 산채운(山採運)도 따르지 않아 필자의 난실 <시란재(詩蘭齋)>에서는 휘황찬란하게 빛나는 난들은 찾아볼 수가 없다.

하기야 비록 이름들은 가칭(假稱)이지만 백화두화소심 <백순(白旬)>, 백화소심 <백나(白那)>, 자화소심 <자작(紫鵲)>, 적화소심 <주작(朱鵲)>, 서호사피 홍화소심 <비홍(秘紅)>, 하화판 홍화 <홍련(紅蓮)>, 주금소심 유향종 <금향(金香)>, 두화소심 <종심(鍾心)>, 중투 <동안(童顔)>, 서호중투 <옥류(玉流)>, 녹중투 <아련(雅㜻)>, 선호반 <취우(翠雨)>, 서호반 <청홍(靑虹)>, 극서호반 <요원(燎原)>, 호피반 <금곡(金谷)> 및 <진골(眞骨)>, 옥반(玉斑)사피 <벽옥(碧玉)>, 서호사피 <금천(錦川)>, 산반 <필통(筆筒)>, 연서 <초원(草原)>, 분홍색꽃 <훈잠(纁簪)>, 광엽두화 <무림(茂林)>, 수채화 <담채(潭彩)> 및 <제광(濟光)>, 원판산반소심 <제은소(濟恩素)>, 등이 <시린재>에 있긴 하지만 아직 대주가 되지 못해 자랑할 정도는 아닌 것이다.

필자는 위에 언급했지만 지나온 인생에 대해 후회는 해 보았지만 난을 한 것을 후회한 적은 없다. 그것은 난을 통해 사람을 알게 되고, 사람을 알게 됨으로써 그 사람들을 거울삼아 그들에게 비친 자신의 모습을 똑 바로 볼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오래 전에, 보다 지성적(知性的)이고 화기애애(和氣靄靄)한 난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바 있는 이평후 선생이나 매란방 홍승표 사장님 같은 분들에게 비친 필자가 한국춘란, 그것도 민춘란 같이 수수하기만 한 모습이기를 바라면서 다른 분들에게는 어떤 모습이었을까를 생각해 본다.

그간 이런 난 저런 난을 보고, 이런 난인 저런 난인들을 보며 편지도 많이 보내고, 이메일도 많이 보내고, 쪽지도 많이 보내고, 문자도 많이 보냈었다. 개중에는 무슨 까닭에서인지 기왕의 안면조차 속된 말로  몰수해 버리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 제주도의 김광제 선생처럼 수년이 지났어도 잊지 않고 안부를 전해 오는 분들도 있는데, 어쨌든 하늘이 알 뿐이지만 정성(精誠)을 다해 쓴 편지, 이메일, 쪽지, 문자에 끝내 화답을 해 주지 않는 사람들이 꽤 있다는 사실은, 난을 하는 사람이라면 일반 시정잡배(市井雜輩)와 그 성품이 차원을 달리할 것이라 믿어 온 필자를 슬프게 만들어 버리기까지 했다.

그들은 물론 답을 해 줄 의무도 없고, 또 필자가 답을 하지 않는 사람들을 원망할 위치에 있지도 않지만, 어찌 자기 집을 찾아와 길을 묻는 사람에게 맹물 한 잔 대접하지 않고 일언반구(一言半句) 대척도 없이 문을 더 세게 닫아걸어 버릴 수가 있는지 그 이유가 자못 궁금할 뿐이다.

본 칼럼에 자주 즐겨 인용하는 바이지만, 난심에 상처가 생길 때마다 그리운 분이 이제는 다 고인(故人)이신 거제의 향파(香坡) 김기용(金琪容) 선생님과 독보적인 난 전용 유기질 비료였던 <유비(有肥)>의 최낙정 사장님이다. 김기용 선생님은 돌아가시기 불과 몇 달 전에 보낸 필자의 편지에 자필로 답서를 보내 주셨고, 최낙정 사장님은 필자가 던진 작은 의문에 대해 휴대폰을 통해 장장 한 시간 이상 설명을 상세히 해 주실 만큼 자상한 분이었다.

난은 난일뿐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난이 번쩍거리면 자신의 인격(人格)도 번쩍거리는 줄로 착각하는 사람들에게 한 마디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다.

논쟁에서 A가 이기고 B가 졌을 때 우리는 <A가 이겼다>고 말하지만, 이것은 잘못된 표현이고 <A의 생각이 이겼다>라고 해야 맞는 표현이라고 한다. 이긴 것은 <A>가 아니라 <A의 생각>이듯이 번쩍거리는 것 역시 어디까지나 <자신>이 아니라 잘 자라 준 <자신의 난>이라는 점이 그것이다.

2011년은 신묘년(辛卯年)으로 별주부(鼈主簿)에게 잡혀 갔어도 무사히 살아 돌아온 토끼의 해이다. 그 토끼의 꾀를 슬기로움으로 승화시켜 너영나영 분별력들을 가진다면 우리 난계에도, 원가도 없고 영원한 주인도 없는 난을 두고 속이는 일, 뽐내는 일, 다투는 일, 질투하는 일들이 다 없어지고 서로 도우며 밀어주고 당겨주는 겸허하고 아름다운 모습들만이 가득 차게 될 것이다.

그러한 난계를 위해 조금도 표 나지 않고, 보잘것없는 난실이지만, 언제나 나도 사랑하고 남도 사랑하는 착하고 순한 마음으로 <시란재>를 오래오래 가꾸며 인생을 즐기고 싶은 것이 필자의 소망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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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난 카렌다를  손수 보내주시고 받은 난도 잘 크고 있다는 말씀에 무척 기쁘다.

이제 3월이 되면 전시회에서 이쁜 모습을 보일  이 난 을 바라보며

난을 가까이 하며 즐기는 재미에 많은 사람들에게 권하고 싶다.

오늘 20여분을 꽃망울을 바라보며

피어날 삼월을 기다려 본다.

 

2011.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