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혈
제주에는 태초에 사람이 없었다.
홀연히 세 신인이 땅에서 솟아나니, 한라산 북녘 기슭에 있는 모흥혈 (毛興穴)에서 솟아난 것이다.
맏이를 고을나(高乙那), 다음을 양을나(良乙那), 셋째를 부을나(夫乙那) 라 했다.
그들의 용모는 장대하고 도량은 넓어서 인간세상에는 없는 모습이었다.
그들은 가죽옷을 입고 육식을 하면서 항상 사냥을 일삼아 가업을 이루지 못했었다.
하루는 한라산에 올라 바라보니 자주빛 흙으로 봉한 나무함이 동해쪽으로 떠와서 머물러 떠나지 않았다.
세 사람이 내려가 함을 열어 보니,
그속에는 새알 모양의 옥함이 있고 자주빛 옷에 관대를 띤 한 사자가 따라와 있었다.
그 옥함(玉函)을 여니 푸른옷을 입은 처녀 세 사람이 있었는데, 모두 나이는 15,6세요, 용모가 속되지 않아 아리따움 이 보통이 아니었고, 각각이 아름답게 장식하여 같이 앉아 있었다.
또 망아지와 송아지, 오곡의 씨를 가지고 왔는데, 이를 금당의 바닷가에 내려 놓았다.
세 신인(神人)은 즐거워하여 말하기를 『 이는 반드시 하늘이 우리 세사람에게 주신 것이다』고 했다.
사자(使者)는 재배(再拜)하고 엎드려 말하기를 『나는 동해벽랑국의 사자 입니다.
우리 임금께서 세공주를 낳으시고, 나이가 다 성숙해도 그 배우자를 얻지 못하여 항상 탄식함이 해가 넘는데,
근자에 우리 임금께서 자소각에 올라 서족 바다의 기상을 바라보시더니,
자주빛 기운이 하늘을 이어 상서로운 빛이 서리는 것을 보시고,
신자 세 사람이 절악에 내려와 장차 나라를 열고자 하나 배필이 없으시다 하시고,
신에게 명하여 세 공주를 모셔 가라 하여 왔사오니, 마땅히 혼례를 올려서 대업을 이루소서』하고,
사자는 홀연히 구름을 타고 어디 론지 사라져 버렸다.
세 신인은 곧 목욕 재계하여 하늘에 고하고,
나이 차례로 나누어 결혼하여 물좋고 기름진 땅으로 나아가 활을 쏘아 거처할 땅을 정하니,
고을나가 거처하는 곳을 제1도(第一都)라 하고,
양을나가 거처하는 곳을 제2도(第二都)라 했으며,
부을나가 거처하는 곳을 제3도(第三都) 라 했다.
이로부터 산업을 일으키기 시작하여 오곡의 씨를 뿌리고 송아지 망아지를 치니 날로 살림이 부유해져서
드디어 인간의 세계를 이룩해 놓았다.
그 이후 9백년이 지난 뒤에 인심이 모두 고씨에게로 돌아갔으므로 고씨를 왕으로 삼아 국호를 탐라(托羅)라 했다.
여기에서 세 신인이 솟아났다는 모흥혈은 지금의 제주시 이도동에 있는 삼성혈(三姓穴)로서
지금도 구멍 셋이 남아 있으며,
세 신인이 거주하였다는 제일도·제이도·제삼도는 지금의 제주시 일도동·이도동·
삼도동으로 제주 시가의 중심지이다.
그리고 세 처녀가 닿은 동쪽 바닷가는 지금의 남제주군 성산읍 온평리라고 문헌이나
전설상에 나타나 있다. 온평리에는 세 처녀가 올라올 때 찍혔다는 말 발자국이 바닷가 바위에 남아 있으며,
또한 세 신인이 혼인하였다는 ‘혼인지(婚姻池)’라는 못이 있다.
그리고 세 신인이 거처할 곳을 정할 때 쏜 화살을 맞은 돌이
제주시 화북동에 삼사석(三射石)이라 하여 남아 있다.
한편, ≪영주지≫ 계열의 기록은 ≪고려사≫의 기록과 비교하여 이야기의 기본 구조는 같으나
세부적인 사항에서 약간의 차이가 난다.
그 차이점은 세 신인의 차례가 고을나·양을나·부을나의 순서로 되어있고,
세 처녀가 동해(東海) 벽랑국(碧浪國)의 왕녀이며, 닿은 곳은조천읍 조천리의 금당(金塘)이고,
세 처녀가 담긴 함은 새알 모양의 옥함이며, 세 신인이 거처한 곳인 고을나는 지금의 제주시 일도동,
양을나는 안덕면의 산방리, 부나는 표선면의 토산리로 되어 있는 점이다.
그리고 여기에 세 신인이 활을 쏘아 용력을 시험하여 상·중·하를 정하고 군·신·민의 서열을 정하여
건국하였다는 기록이 덧붙어 있다.
이 신화에 나타나는 삽화와 화소들은 송당본풀이를 비롯한 제주도내의 많은 당신화(堂神話)에서도 발견된다. 그 내용은 제주도 내의 어느 곳에서 솟아난 남신(男神)이 수렵 생활을 하다가
동해 용왕국의 막내딸과 혼인하여 농경 생활을 시작하고,
활을 쏘아 좌정할 곳
을 정하여 당신이 되고 마을을 수호하게 되었다는 식의 이야기이다.
이런 비슷한 이야기가 여러 곳에서 발견되는 것으로 보아, 삼성신화는 본래 삼성 씨족의 조상본풀이면서
이들 씨족이 숭앙하던 당신본 풀이적 성격의 신화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 신화의 삽화들을 외국 신화와 비교하여 보면,
시조가 땅속에서 솟아났다는 지중용출시조신화(地中湧出始祖神話)는
한반도에서는
발견되지 않고, 오키나와(沖繩)의 미야코 제도(宮古諸島)·야에야마 제도(八重山諸島),
대만(臺灣)의 고사족(高砂族), 타이족, 묘족(苗族) 등에서 발견되며,
시조가 상자 모양의 배를 타고 뭍에 닿았다는 상주표착시조신화(箱舟漂着始祖神話)는
수로왕비(首露王妃)·탈해왕신화(脫解王神話) 등으로 우리 나라 남해안에서 나타나며,
쓰시마(對馬島)·미야코·고사족·필리핀·베트남(安南) 등 동남아시아에
분포 되어 있다.
그리고 세 신인이 신분 서열을 정하는 화소는 유구(琉球)의 창세신화나 묘족의 시조신화 등에 보인다.
이런 분포 상황으로 보아 이들 신화 요소는 각각 남쪽으로부터 제주에 흘러들어 와서 결합,
융해되고 새롭게 창출되어 토착화된 제주의 신화가 된 것으로 추정된다.
삼성신화에는 수렵문화에서 농경문화로 넘어가는 단계 및 씨족사회가 부족국가로 형성되던
단계의 문화적 배경이 반영되어 있다.
또한, 이 신화는 한반도의 다른 건국신화에서 흔히 등장하는 천강(天降)·난생(卵生) 등의 화소가 없이,
특이한 화소로 짜여지고 있어 제주도 신화의 특이성을 보여 주는 동시에,
우리 나라 고대신화에 있어 특이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삼성신화는 제주 도민에게 사실로 믿어져 왔으며,
예전에는 이 신에게 무속 의례를 행하였던 것으로 추측되는데,
조선 중종 때 목사 이수동(李壽童)이 삼성혈에 울타리를 두르고 비석과 홍문(紅門)을 세워 세 신인의 후예로 하여금 제사 지내도록 한 이래, 오늘날까지 유교식 제법으로 제사를 지내고 있다.
현재는 춘추제(春秋祭)와 건시제(乾始祭 : 전에는 穴祭라 하였음.)를행하고 있는데,
춘제는 4월 10일, 추제는 10월 10일 세 씨족이 받들어 모시며,
건시제는 12월 10일에 도지사와 도내 기관장·유지가 헌관이 되어 건국시조에 대한 제사를 지내고 있다.
삼성혈은 지금 성역화 되어 있으며 사적 제134호로 지정, 보호되고 있다.
'제주올레,오름 이야기 > 제주비경.전설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瀛洲十二景( 영주12경) (0) | 2010.10.11 |
---|---|
[스크랩] 제주 남지미동굴의 비경 (0) | 2010.10.11 |
[스크랩] 산방덕의 애련한 전설이 깃든 산방굴사 (0) | 2010.10.11 |
[스크랩] 섭지코지 전설 (올레1코스근처 신양리) (0) | 2010.10.11 |
[스크랩] 관덕정(솥장사의 희생) 전설및 역사 (0) | 2010.10.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