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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올레,오름 이야기/제주비경.전설이야기

[스크랩] 관덕정(솥장사의 희생) 전설및 역사

관덕정은 ‘호남 제1정’이라고 부를 만큼 매우 웅장한 정자다.

 



세종 30년(1448)에 당시 목사였던 신숙청이 군사 훈련청으로 창건했다는데,

상량식에 대한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이 정자를 지으려고 할 때 목사는 전국에서 유명한 목수들을 불러들였다. 그런데 이상하게 다 지으면 쓰러지고, 지으면 쓰러지고 했다. 일류 목수들이었지만,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이번엔 꼭 쓰러지지 않게 지읍시다.”

목수들은 더욱 치밀한 계산을 하고 다시 공사를 시작했다.
한참 공사가 진행되고 있는 어느 날, 어떤 중이 지나가다 삿갓을 들어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또 쓰러지겠는 걸.”
“지가 무엇을 안다고 불길한 소리야!”

목수들이 야단을 치자 중은 삿갓을 덮어쓰고 묵묵히 가 버렸다. 이번에도 완공되자마자 다시 쓰러지고 말았다. 그제야 중의 이야기가 그냥 흘러버릴 수 없는 소리라는 걸 깨달은 목수들은 사방으로 그 중을 찾았다. 한 달 만에 겨우 찾아 방법을 알려 달라고 애원했다.

“닭이나 돼지 상량으로는 안 되고, 사람상량식을 해야 합니다.”

모두들 깜짝 놀랐다.

“어떻게 사람을 희생시켜 상량식을 합니까?”
“어렵지 않습니다. 아무 날, 아무 시에 상량을 할 것으로 준비해서 ‘상량!’하고 큰소리를 지르면 지나가던 솥장수가 죽을 것입니다. 그를 희생으로 해서 상량식을 하면 됩니다.”

말이 안 되는 소리 같았지만, 어쨌거나 중이 하라는 대로 하기로 하고 다시 공사를 시작했다.
어느덧, 상량할 날이 되었다. 목수들이 상량식 준비를 하고 있는데, 마침 동쪽에서 솥장수가 큰 솥을 머리에 이고 오고 있었다. 솥장수가 관덕정 앞마당에 이르렀을 때 사람들이 웅성웅성하더니 “상량!”하는 큰소리가 울렸다.

  솥장수가 이게 무슨 소리인가 싶어 머리를 들어 쳐다보려고 하는 순간, 솥이 무거워 넘어지면서 그 자리에서 죽고 말았다. 목수들은 이 솥장수를 희생으로 해 상량식을 지냈다. 그때야 관덕정은 다시 쓰러지지 않고 완공되었다고 한다.

 

[觀德亭]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삼도 1동에 자리한 군사훈련용으로 지어진 조선시대 건물.

 

보물 제322호.

 

1448년(세종 30) 제주목사 신숙청(辛淑晴)이 군사훈련청으로 창건한 것으로

 

  제주도에 있는 전통적인 건물 중 가장 크다.

 

1480년(성종 11) 목사 양찬(梁讚)이 중수했고, 1690년(숙종 16) 이우항(李宇恒)이 개축하고,

 

1753년(영조 29) 김몽규(金夢圭)가 중창했다. 현재의 건물은 1850년(철종 1)에 재건한 것을 1969년에 보수한 것이다.

 

특히 1924년 관덕정 옆으로 도로를 낼 때 깊은 처마가 걸린다고 해서 일본인들에 의해 처마가 45㎝가량 절단되어

 

기둥 간살이의 담벼락이 제모습을 잃게 되고, 처마의 깊이와 기울기가 육지의 것과 비슷하게 되었다.

 

앞면 5칸, 옆면 4칸의 단층 팔작지붕으로 사방이 뚫려 있다.

 

장대석 바른층쌓기를 한 높지 않은 이중기단 위에 원뿔 모양으로 다듬은 초석을 놓고 26개의 둥근 기둥을 세웠다.

 

기둥 위에는 이익공(二翼工) 형식의 공포를 얹었고, 기둥 사이에 3개의 화반(花盤)을 놓았으며,

 

화반 위에 운공(雲工)을 끼웠다. 지붕틀은 7량 구조로 내부에 4개의 고주를 세워 대들보를 받치고 있다.

 

전면 툇간에는 마루를 깔지 않고 장방형 현무암판을 깔아 우물마루를 깐 나머지 부분과 구별하고 있다.

 

내부의 포벽(包壁)에는 처음 만들 때 그려진 것으로 보이는 7폭의 벽화가 남아 있다.

 

1702년(숙종 28) 이형상(李衡祥)이 제주목사로 지내는 동안 견문한 것들을 기록한

 

〈남환박물 南宦博物〉에 관덕정에 관한 기록도 있다.

 

 


출처 : 무명초 올레길 풍경
글쓴이 : 무명란초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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