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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올레,오름 이야기/제주비경.전설이야기

[스크랩] 영실기암(瀛室奇巖) 전설

영실기암(瀛室奇巖) 

 

 

한라산 백록담 서남쪽으로 선작지왓을 지나 해발 1,600여 미터에 이르면 깊은 계곡이 나타난다.

둘레 약 2킬로미터,깊이 350미터에 이르는 이계곡은 그 주위에 수많은 기암 괴석들이 여러 형상으로

 솟아 있어 장관을 이룬다. 계곡 안에는 맑은 물이 흐르고 암석들이 하늘을 향해 버티어 있고,

울창한 수림과 바위 사이에 어울리게 들어앉아 있는 나무들이며,

귀설은 새소리들 이러한 것들이 함께 어울려 장관을 이룬다.

절벽 동쪽은 500여 개가 넘는 이상야릇한 형상의 돌기둥들이 숲을 헤치고 치솟아 있어,

 마치 장군들이 열병식을 받기 위해 서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해서 이곳을 '오백장군'이라 부르기도 한다.

또한 보는 이에 따라 이들 돌상들이 마치 부처가 서 있는 것으로 생각해서

'오백나한(五百羅漢)'이라 불리기도 했다.

서쪽 바위벽에도 1,000여 개가 넘는 돌기둥들이 바위에 붙어 갖가지 형상을 자아내어 신비감을 더해 준다.

사람들은 이 바위를 그 형상을 본떠서 '병풍바위'라 부르기도 한다.

이러한 자연 경관뿐만이 아니라, 철따라 이곳의 풍광은 특이한 아름다움을 연출한다.

가을에는 붉은 단풍들과 허옇게 빛 마랜 마른 천 년 돌이끼를 입은 돌기둥들이 단풍 사이를 헤쳐 나와

한테 어울린다. 그것들은 겨울을 재촉하는 한라 정상의 찬바람을 맞으면서도,

오히려 겨울 문턱에서 찬 계절을 기다리는 의연함을 잃지 않는다.

한겨울 눈속에도 돌기둥 표정은 변함이 없다.

장군이거나 세속을 초탈한 부쳐들이고 보면, 계절이 바뀜이 무슨 상관이랴.

 

 

그러나 늦은 봄 진달래 잔치판에서는 이들로 함께 취하지 않을 수 없다.

메마른 돌기둥에도 이때쯤이면 물이 오른다.

마른 이끼에 촉촉한 여유가 생기면서 한여름 무르익을 녹음을 기다린다.

 이른 여름에 찾아드는 안개를 껴안고 깊숙한 사연을 소근거릴 때,

사람들은 누구도 이들의 표정을 읽을 수가 없다.

언뜻언뜻 사람의 눈앞에 나타났다가 안개 속에 숨어 버리는

거센 바람에 방향 없이 흔들리며 요동치는 안개 무리를 따라 순간 나타났다 사라지고,

반쯤 보이다가 없어지는 기암 괴석들의 잦은 변화가 보는 이로 하여금 또 다른 정취를 자아내게 한다.

그러나 바람이 자고 안개가 자욱하여 골 깊숙히 내려앉았다가 다시 피어오르면

영실은 침묵하던 그 자리에 서 천천히 고개를 든다.

더구나 이곳에는 언제고 물소리가 끊이질 않는다.

한라산의 계곡이 모두 갈천인데도 여기서는 샘 같은 물이 항상 흐른다.

이 물은 강정천(江汀川)의 근원이 되어서,

논이 귀한 제주에 몇 안되는 논지대를 만들어 주는 귀중한 물줄기이다.

이 영실에는 수많은 식물들이 자생하고 있다.

동편 암벽 쪽에는 흰 진달래, 섬바꽃, 어수리, 구상나무, 제주백회(白會), 고채나무 등이

 한데 어울려 원시림을 이루고 있다.

서쪽 벽에도 섬매자, 시로미, 주목, 병꽃 등 관목들이 숲을 이루고 있다.

식물 연구가들의 보고에 의하면, 이 계곡 안에는 약 450여 종의 식물들이 자생하고 있다한다.

또한 이 계곡을 이루고 있는 절벽들도 그 지질이 서로 다르다고 한다.

서쪽 병풍바위는 잘 발달된 주상절리층(柱狀節理層)이지만,

동쪽 바위들은 모두 용암이 약한 지층을 찾아 분출하여 이루어 졌다고 한다.

 

 

이러한 아름다운 자연 경관과 더불어 살아온제주 사람들은 여기에서 많은 이야기를 만들어 내었다.

옛날 어떤 부인이 아들 500명을 데리고 살았다.

식구들은 많은데 마침 흉년이 들어서 끼니를 이어가기가 힘들게 되었다.

어느날 어머니는 아들들에게 "어디 가서 양식을 구해 와야 죽이라도 끓여 먹지 않겠냐"고 재촉했다.

그래서 500형제 모두가 양식을 구하러 집을 나갔다.

아들들이 동냥을 얻어 돌아왔다.

어머니는 아이들이 얻어 온 양식으로 큰 솥에 죽을 끓이기 시작했다.

500명이 먹을 죽을 끓이기 위해서 그 어머니는 가마솥 가를 돌아다니면서 죽을 지었다.

그러다가 잘못해서 그만 죽 끓이는 솥에 빠져 헤어나지 못했다.

그런 사연도 모르고 아들들은 죽이 다 되자 모여들어 맛있게 죽을 먹었다.

그러다가 이상한 뼈다귀를 발견했다.

이상하다 생각한 아들들은 그제서야 어머니가 안 보이는 것을 알았다.

얼마 뒤에 아들들은 사실을 알았다.

 먼저 그 사실을 안 막내 동생은 하도 부끕러고 한스러워서 집을 빠져나와 서쪽으로 달려가다가,

지금 한경면 고사리 바닷가 차귀섬까지 이르러서는 결국 바위가 되고 말았다.

집에 남은 형들도 그 사실을 알고나 정무 영실 5백장군은 사실은 499명 장군안대,

한 장군은 차귀섬에 있다고 전한다.

제주 사람들은 장국처럼 또는 부지처럼 보인다는 이 아름다운 석상(石像)들에

하필이면이처럼 한스러원 사연을 엮어 놓았을까.

 

글 자료 퍼옴

사진편집

출처 : 무명초 올레길 풍경
글쓴이 : 무명란초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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