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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낙서장/ 蘭 과함께 낙서

 

 

 

 

난초는 여름, 남쪽, 그리고 예를 상징한다.

 대나무와 더불어 문인들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은 소재이다.

난초는 난(蘭)과 혜(蕙)로 분류되는데, 난은 일경일화(一莖一花)인 춘란류를,

혜는 일경다화(一莖多畵)인 건란류를 가리킨다.

그래서 '혜본난지족 의연취미동(蕙本蘭之族 依然臭味同)'이라 표현하기도 한다.

 

우리나라 자생란은 90여종이 있다고 알려져 있으나 주로 춘란류가 대부분이다.

난은 유곡가인(幽谷佳人) 혹은 군자지향(君子之香)으로 표현하여

선비의 맑고 아름다운 자태와 은자(隱者)의 그윽한 품성을 나타내기도 한다.

 

그리고 초나라의 충신이자 초사문학의 창시자인 굴원(屈原)을 기려 선비의 결백함과 우국충정의 지조를 상징한다.

 그리고 역경의 계사전(繫辭傳)에서는 ‘두사람의 마음이 같으면 그 예리함이 쇠와 돌을 자를 수 있고,

 한 마음에서 나오는 말은 그 향기가 난과도 같다.(二人同心 其利斷金 同心之言 其臭如蘭)라고 하여

 벗 간의 우정어린 사귐을 금란지교(金蘭之交), 금석지교(金石之交), 단금지교(斷金之交)(주 지음)라 하고,

 명심보감에서는 ’착한사람과 함께 있으면 난초 지초가 있는 방에 있음과 같아 오래 있으면 절로 그 향내가 배인다.

‘(與善人居 如入芝蘭之室 久而不問 其香卽與之化矣)라고 하여

군자들의 은근하고 아름다운 교제를 지란지교(芝蘭之交)라 표현한다.

 

난초의 이러한 상징성으로 인해 문인화의 소재로써 즐겨 그려졌으며

선묘화(線描畵)인 동양그림의 특징을 가장 드러내고 있다.

서양화나 여타의 채색화와 달리 ’최초의 일필이 최후의 일필‘이 되도록

일필휘지로 단숨에 그리므로 ‘난을 친다.’라고 표현한다.

 

 

 

 

 이처럼 난초는 일필로써 대번에 완성하여야 하므로 잎 하나라도 제 형세를 잃으면 고칠 수 없어

 심수상응(心手相應)의 경지에 이르도록 꾸준히 화기(畵技)를 연마하여야한다.

 

그래서 대원군 이하응은 “좌란(左蘭) 30년, 우란(右蘭) 30년이라 하여 좌와 우로 잎이 뻗은 난을 익히는데

각각 30년 도합 60년이 걸렸다”고 하였으니 난을 제대로 그리는데 한 평생이 걸린다는 말이다.

 

추사 김정희도 “그림 중 난초 그리기가 가장 어려워 산수, 매화, 대나무, 물고기 그림 등에 있어서는

모두 대가를 낳았지만 유독 난초만은 특별히 소문난 대가가 없다.” 라고 하였다.

 

그리고 “난초 그림의 뛰어난 화품(畵品)이란 형사(形似 닮게 그림)에 있는 것도 아니고 지름길이 있는 것도 아니다.

또 화법(畵法)만 가지고 들어가는 것은 절대 금물이며 많이 그린 후에라야 가능하다.

 

아무리 구천 구백 구십 구분에 이르렀다 해도 나머지 일분 만은 원만하게 성취되기 어렵다.”고 하였으며

 또한 “ 내가 난초 치는 것을 배운지 30년이 되어서 정사초, 조맹견, 문징명, 진원소, 서위 등 여러 옛 그림을 보았고

요즈음은 정판교, 진탁석처럼 뛰어난 사람들이 그린 것들도 자못 다 볼 수 있기에 이르렀지만

그 백분의 일도 비슷하지 못하였다.

 

 비로소 옛것을 배우는 것이 가장 어려우며

 난초 치는 것이 더욱 어려운데 함부로 가볍게 손대 보았던 것을 알았을 뿐이다.” 라고 토로 하였다.

 

조희룡은. “매화나 소나무, 대나무는 붓을 대어 잘못되면 고칠 수 있으며 구제도 할 수 있다.

그러나 난 그리는 법에 있어서는 한 잎이라도 그 세를 잃으면 그만 두어야 한다”라고 하였다.

 

 추사는 난초 그림의 묘미를 ‘삼전의 묘(三轉之妙)’ 즉 ‘난 잎을 세 번 휘어져 돌아가게 그림에 있다.’

하였으며 삼전지묘는 마음을 비우고 그렸을 때 도달할 수 있는 경지로 삼전지묘를 제대로 나타내지 못하면

난이 아닌 잡초를 그렸음에 불과하다고 하였다.

 

 

 

 

난초 그림으로는 김정희의 추사란(秋史蘭), 이하응(李昰應)의 석파란(石坡蘭), 민영익(閔泳翊)의 운미란(芸楣蘭)등이

유명한데, 우리나라에서는 18세기 이후부터 많이 그려졌다.

 

조희룡은 “난를 그릴 때에는 낙신부를 읽는 것처럼 애절하면서도 정감어린 눈으로 그려야 하며

난을 그림으로써 사람의 성령(性靈 사람의 성정에 있는 맑고 순수한 기운이나 개성)을 길러

수명까지도 연장할 수 있다”고 하였다.

즉 난초를 그림으로써 몸과 마음이 건강한 삶이 가능하다는 말도 되겠다.

 

한편 추사 김정희는 난초를 치는 법은 예서 쓰는 법과 가까우니 반드시 문자향, 서권기를 갖춘 후에야

제대로 친다고 하고, 난을 치는 법은 그림 그리는 법칙대로 하는 것을 꺼린다고 하여

조희룡 같은 무리는 가슴속에 문자향이 없기 때문에 자신에게서 난초치는 법을 배워도

 끝내 그림 그리는 법칙 한길을 면치 못했다고 폄하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추사의 생각은 그림(문인화)을 서법의 단련에 의한 사의적 묵희로서만 받아 들여

 회화적 안목이 부족했던 서법과 문기에 치우친 갇힌 사고로 다양한 기법에 의한 표현능력을 중시하는

현대적 문인화관과는 큰 괴리감을 느끼게 하는 주장이라고 본다.

형사를 중시 않은 반 추상적 사고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조희룡은 “글씨와 그림은 손재주이다. 재주가 없으면 비록 총명한 사람이 종신토록 배워도 잘할 수 없다.

그러므로 (글씨와 그림은) 손끝에 있는 것이지 가슴에 있는 것이 아니다” 라고 하였다.

조희룡은 서권기, 문자향을 전적으로 무시하지는 아니 하였다.

단 그것은 문인화를 그림에 있어서 필요조건 일 뿐 타고난 예재(藝才)와 부단한 기예의 연마라는

 충분조건을 갖출 때 비로소 제대로 된 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근대적 회화관이라 하겠다.

 

난 그림 중 뿌리를 노출시킨 것을 노근란(露根蘭)이라고 한다.

노근란은 몽고족인 원에 의해 망국의 유민이 된 남송의 정사초(鄭思肖)가 뿌리를 내릴 터전인 조국이 없음을 한하여

그렸다고 전해진다. -(펌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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