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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이야기/ 난향과 함께

난초 명언록

 

 

------------   난초 명언록   --------

여기에서 소개하는 난초에 관한 명언록은 塗丁 權相浩 선생님의 자료집에서

인용한 것으로 부분적으로 어려운 내용도 있으나 난초에 대하여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아 옮깁니다.

 

 

 



■   어록   ■

  난초가 깊은 산 속에 나서 알아 주는 사람이 없다고 하여 향기롭지 않은것이


아니다.

사람이 도를 닦는 데도 이와 같아서, 궁하다고 하여도 지절(志節)을 고치지 아니

하는 것이다. 《공자가어 孔子家語》




  착한 사람과 함께 있으면 난초가 있는 방에 앉아 있는 것처럼 향기롭다.

《공자가어 孔子家語》

 


  난을 치는 데는 마땅히 왼쪽으로 치는 한 법식을 먼저 익혀야 한다.

왼쪽으로 치는 것이 난숙(爛熟)하게 되면 오른쪽으로 치는 것은 따라가게 된다.

이것은 손괘(損卦)의 먼저가 어렵고 나중이 쉽다는 뜻인 것이다.

군자는 손 한 번 드는 사이에도 구차스러워서는 아니 되니,이 왼쪽으로 치는

한 획으로써 가히 이끌어 윗것을 덜고 아랫것을 보태는 것을 대의(大義)로 하되,

곁으로 여러 가지 소식에 통달하면 변화가 끝이 없어서 간 데마다

그렇지 않음이 없을 것이다.

이런 까닭으로 군자가 붓을 대면 움직일 때마다 문득 계율(戒律)에 들어맞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어째서 군자의 필적(筆蹟)을 귀하게 여기겠는가.

이 봉안(鳳眼)이니 상안(象眼)이니 하여 통행하는 규칙은 이것이 아니면 난을

칠 수가 없으니, 비록 이것이 작은 법도이기는 하나 지키지 않으면 이를 수가

없다.

하물며, 나아가서 이보다 큰 법도이겠는가.

이로써 한 줄기의 잎, 한 장의 꽃잎이라도 스스로 속이면 얻을 수 없으며,

또 그것으로써 남을 속일 수도 없으니,

「열 사람의 눈이 보고 열 사람의 손이 가리키니 엄격할 것인저.」

이로써 난초를 치는 데 손을 대는 것은 스스로 속이지 않는 것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김정희 金正喜/제군자문정첩 題君子文情帖》

 


  비록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이라도 반드시 난초를 모두 잘 치지는 못한다.

화도(畵道)에 있어서 난초는 따로 한 격식을 갖추는 것이니,

가슴속에 서권기(書卷氣)가 있어야만 이에 가히 붓을 댈 수 있느니라.

《김정희 金正喜》

 


 

  난은 그 화태(花態)가 고아할 뿐 아니라 경엽(莖葉)이 청초(淸楚) 하고

형향(馨香)이 유원(幽遠)하여 기품이 우(優)함과 운치의

부(富)함이 화초중에 뛰어 나므로 예로부터 군자의 덕이 있다고 일컬어 문인

묵객(墨客) 사이에 크게 애상(愛賞)되어 왔다.

세인이 흔히 난과 지(芝)를 병칭하나 지는 선계(仙界)의 영초(靈草)로

그 실물을 목도(目睹)한 이가 드문 모양이다.

혹은 지(芝)에 자(紫)와 백(白)의 두 종류가 있어 줄기의 길이가 한 자가 넘는바,

바위 위에 나며 그 형상(形狀)이 돌과 같으며

사람이 먹는 고로 가을에 채취한다고 하나 잘 알 수 없는 바다.

그리고 흔히 난(蘭)과 혜(蕙)를 병칭 하지만 양자의 구별은 일언가변

(一言可辨)할 수 있으니 홍만선(洪萬選)의 산림경제(山林經濟)

양화편(養花篇)을 보면,

「一幹一花而香有餘者蘭也, 一幹七花而香不足者蕙也」라 하였다.

한 줄기에 한 송이 꽃이 피어 향기가 넘치는 것이 난이요,

한 줄기에 예닐곱 송이 꽃이 피어 향기가 적은 것이 혜(蕙)니라.

《문일평 文一平/호암전집 湖岩全集》

 

 


◈  간단히 말해 난은 꽃이 적고 향기가 많으니

「문향십리(聞香十里)」라고 함이 반드시 턱없는 한문식의 과장만이 아니다.

난화를 향조(香祖)라 또는 제일향(第一香)이라 이름함이 어찌 이유가 없음이랴.

동국(東國)에 진란(眞蘭)이 없다 하나, 호남연해(湖南沿海)의 명산에는

방란(芳蘭)이 있다는바,

제주 한라산 속에도 글자대로 유곡방란(幽谷芳蘭)이 흔히 발견 된다고

하며 또 제주읍 서쪽으로 이십리에 청천(淸川)이 흐르는

도근촌(道根村)에는 진란이 있는데 꽃빛이 하얀 것이 더욱 아름답다 한다.

청천(淸川)의 양화소록(養花小錄)에

「生湖 南沿海諸山者品佳 霜後勿傷垂根 帶舊土依古方 栽盆薦妙

春初花發 張燈置諸案上 則葉影印壁膳膳可玩讀書之餘 可滑睡眠..」

이라 한 것을 읽으면 사람으로 하여금 난실(蘭室)의 유향(幽香)이 심신에 배는

듯한 느낌이 생기게 하는 바 있다.

난(蘭)에는 춘란(春蘭)과 추란(秋蘭)이 있는데, 전자는 꽃과 잎이 아결(雅潔)하기

짝이 없다. 《문일평 文一平/호암전집 湖岩全集》





◈  수선(水仙)을 기르기 까다롭다 하지만, 한 달쯤 공을 들이고 보면 꽃을 볼 수

있지만, 난은 한 해 또는 몇 해를 겪어도 꽃은 커녕 잎도 내기가 쉽지 않다.

난은 싱싱하고 윤이 나는 그 잎이 파리똥만한 반점도 없이 제대로 한두 자

이상을 죽죽 뻗어야 한다.

난은 종류에 따라 대엽, 중엽, 세엽(細葉)과 입엽(立葉), 수엽이 있다.

대엽 입엽인 이 건란(建蘭)은 다른 난에 비하여 퍽 건강한 편이고 보통 소심란

보다는 윤이 덜하고 더 푸르되, 대엽 춘란같이 짙지는

않다. 난은 잎만 보아도 좋다.

수수하고도 곱고 능청맞고도 조촐하고 굳세고도 보드라운 그 잎이 계고(溪菰),

창포(菖蒲), 야차고(野次菰)와는 같은 듯해도 전연 다르다.

이걸 모르고 난을 본다든지 그린다든지 하면 난이 아니요, 잡초다.

《이병기 李秉岐/건란 建蘭》




◈  모름지기 난과의 대화는 바로 참선과도 통한다.

가만한 가운데서 주고받는 상간이불염(相看而不厭)의 품앗이가 바로 난과의

호흡이자 정의 오감이다. 《이병도 李丙燾/난 蘭》




 


■   난시(蘭詩) 



◈  봄을 붙잡으려면 먼저


꽃을 머무르게 해야 한다

봄바람은 꽃을 데리고 가는 것이니

그러나 누가 알랴 이 난초의 향기를

이월에도 삼월에도 오래도록 한결같은

유춘정 아래 난초를. 《양차공 楊次公/유춘정시 留春亭詩》




◈  춘란은 미인과 같아서

꺾지 않아도 스스로 향기를 바친다.

春蘭如美人

不採香自獻 《소식 蘇軾/춘란 春蘭》




◈  눈이 녹지 않은 오솔길 꽃 생각이 많아서

난초 뿌리가 얼음 속에서 솟는다

자라서 복숭아꽃처럼 호화스러운 것은 없으나

그 이름은 항상 산림처사(山林處士)의 집에 있다.

雪徑偸開淺碧花

氷根亂吐小紅芽

生無桃李春風面

名在山林當士家 《양정수 楊廷秀/난화 蘭花》



◈  옥분(玉盆)에 심은 난초 일간일화(一間一花) 기이하다

향풍(香風) 건듯 이는 곳에 십리초목(十里草木) 무안색(無顔色)을 두어라

동심지인이니 채채 백 년 하리라. 《이수강 李洙康》



◈  빼어난 가는 잎새 굳은 듯 보드랍고

자줏빛 굵은 대공 하얀한 꽃이 벌고

이슬은 구슬이 되어 마디마디 달렸다.

《이병기 李秉岐/가람 문선(文選)》



 



◈  한 송이 난초꽃이 새로 필 때마다

돌들은 모두 금강석(金剛石)빛 눈을 뜨고

그 눈들은 다시 날개 돋친 흰 나비 떼가 되어

은하(銀河)로 은하로 날아 오른다.

《서정주 徐廷柱/밤에 핀 난초(蘭草)꽃》





◈  홀로 외로이 어우러져 향을 내뿜는 난초 잎이여!

《구자운 具滋雲/귀가 歸家》





◈  진실로, 난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진 자는 한 십리쯤 떨어진 밖에서라도 그

자우룩한 향기를 알아들을 수 있는 어질고 밝은 귀를 가졌을 것이 아니겠는가.

내 잠 안 오는 어떤 새벽에 베개를 고쳐 머리맡에 남루한 이불을 무릅쓰고 돌아

누우며 백설(白雪)이 덮인 산등성이에 추위 타 떨고 있을 어린 뿌리의 싹수를

생각하고 뜬눈으로 밝힌다.

《김관식 金冠植/아란조》





◈  건란(建蘭)은 줄기 끝에 한두 송이 남기고는 죄다 벌어졌다.

약간 붉은 점과 선이 박힌 누르스름한 그 모양이 담박은 할망정 요염치 않고

이따금 그 향은 가는 바람처럼 일어 온다.

단향처럼 쏘지도 않고 수선·매화처럼 상긋하지도 않고 정향.백합처럼 맵지도

않고 장미처럼 달지도 않고 그저 소리도 않고 들린다.

가까이보다 멀리서 더 잘 들린다.

《이병기 李秉岐/건란 建蘭》



 

 

 



◈  난은 잎이 그리는 선의 멋이 아름답고, 비집고 오르는 촉의 아망과 대공이

자라는 우아와 자줏빛 꽃대에 달린 봉오리의 맺음과 벌음, 그리고 꽃바대에

갈무린 암팡진 꽃의 미소가 볼수록 좋다.

더구나 은은하되 짙고, 짙되 맑은 내음의 풍김이 그윽해서 값지다.

그것이 귀하다 보니 매양 우러러지고, 그것이 값지다 보니 한결 부러워져

난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단골이 불어나는 오늘이다.

수수한 춘란은 흔한 만큼 그런 대로 초심(初心)의 반기이고,

한란은 아무래도 손이 자주 간다. 반출을 말리니까 귀해서다.

소심(素心)은 진한 향기에 맛이 다셔지고, 십팔학사(十八學士)는 빳빳한 잎에

어울려 오르는 새 촉의 밋밋과 꽃대의 앙상한 몸매가 사뭇 샌님처럼 의젓하다.

한편 건란(建蘭)은 헌칠한 학의 목처럼 우뚝해서 휘어진 잎이 수려하고, 엄전한

갈색 대공에서 풍기는 청향은 키다리의 싱거움을 감춰서 좋다.

그리고 보세(報歲)는 싱싱한 넓은 잎에 자르르 흐르는 윤기가 왕성한 향수를

자아낸다.

거기에 미욱하게도 지루한 꽃대의 자람이 보는 눈마저 조바시게 하지만,

그러나 일단 솟아오른 대공에 달린 오동통한 꽃봉오리,

흡사 금붕어 조동아리 같은 꽃과 초롱 같은 꽃망울에 조랑조랑 맺혀진

이슬방울이 눈짐작을 어기고 밤새에 벌어진 꽃술을 적시면,

멀리서까지 그 향이 번져 온 집안이 향기다. 이른바 청초한

문향(聞香)의 운치가 다북한 난의 울력이다. 《이병도 李丙燾/난 蘭》



 



◈  난초처럼 자기의 본분을 잘 지키는 꽃도 드물다.

똑같은 봄꽃이면서도 다른 꽃들처럼 그 색채가 야단스럽지 않고 그 모양이

요염하지 않다.

어딘지 모르게 찬 듯하면서도 덥고, 소박한 듯하면서도 아름답다.

그렇기 때문에 그 향기가 유난스럽고 믿음직스러운 것이다.

난향사시(蘭香四時)란 말이 있다.

춘하추동 그 방향(芳香)이 사시(四時)에 떨친다고 했으니 얼마나 아름다운

미덕을 두고 하는 말이랴!

흔히 난초의 꽃말은 「미인」이라고들 한다.

그것은 곧 은근한 여성의 미를 단적으로 들추어내는 말인 듯하다.

쪽 곧은 줄기는 만고의 절개를 은은히 말해 주고 있다.

《이숙종 李淑鍾/난초 蘭草》





◈  난초 역시 그 소박한 자질이 너무도 청초해서 잎 한 줄기, 꽃 한 송이가

수정처럼 투명하여 진루(塵累)를 벗은 듯한 고고한 모습은 그 드높은 향기와

함께 구름 위에 솟은 선녀의 자태를 방불케 한다.

《장우성 張遇聖/분매 盆梅》





◈  희끄무레 새벽 빛이 열려 오는 장지를 배경하고 유연하게 뻗어 오른 난초

잎에 받들려 방금 벌어지고 있는 꽃송이의 맑음!

이 맑음에 씻기어 나의 주위는 소리 없이 정화되어 가고 있다.

여기 한 송이의 작은 난초꽃 속에 지금 우주에 흩어져 있던 미(美)의 정기(精氣)

가 와서 괴고 있다. 《이영도/난초 앞에서》





◈  이에 비하여 난은 상분(上盆)의 묘(妙)로부터 요수용사 (搏水用沙)의

기(機)의 운용에 실수만 없으면 거의 만전무패(萬戰無敗)였음을 나는 이에서

확언한다.

하나의 비근한 예를 들면 용사에 있어서 동래 온천이나 석굴암의 주변에 있는

누룩빛 모래를 정선(精選)하여 뙤약볕에 골고루 쬐거나 또 참기름에 볶아서

거냉살균(去冷殺菌)한 뒤에야 바야흐로 쓸 수 있다 하나, 나의 경험으로는

우리집 근처인 성균관 뒤나 비원 옆에 흔히들 움켜 올 수 있는 국색사(麴色沙)

도 우수한 이란질(利蘭質)임을 발견했다.

《이가원 李家源/자란지 紫蘭志》



 



   격언·속담 



◈  난초 불 붙으니 혜초(蕙草) 탄식한다.


(同類의 괴로움과 슬픔을 같이 괴로워하고 슬퍼한다는 말)

《한국 韓國》

 

 

 

 





 고사·일화 



◈  정(鄭)나라 풍속에 삼월 상사(上巳)가 되면 진유(溱洧)의 물가에 가서

난초로 혼(魂)을 부르고 또 상스럽지 못한 모든 액(厄)을 물리쳤다.

《한영/한시 韓詩》




◈  ]정문공(鄭文公)의 첩 연길(燕邊)이 꿈에 천사로부터 난초 한 포기를 받았다.

그리고 말하기를 「이것으로 아들을 삼고 이것으로 국향(國香)을 삼으라.」

하였다.

과연 아들을 낳았다.

그가 목공(穆公)이다.

정문공은 연길을 사랑하여 난초를 주었다.

「첩이 아들을 가진 것도 다행한 데 감히 난초까지 받겠습니까?」

라고 연길은 대답했다. 《좌씨전 左氏傳》



◈  의란조(膳蘭操)라는 곡이 있는데 이것은 공자가 작곡한 것이다.

공자가 자기 포부를 펴보고자 사방의 제후를 순방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고향인 노(魯)나라로 돌아오던 중 은곡(隱谷) 가운데에 홀로 무성하게 자란

향란(香蘭)을 보고 길게 탄식하면서,

「난초라는 것은 그 향기가 마땅히 왕자를 위해 아름다워야 한다.

그런데 이제 홀로 아름다워 중초(衆草)와 함께 섞여 있구나.」

하고 수레를 멈추고 스스로 거문고를 탔다.

그는 자신이 아무도 만나지 못한 것이 상심되어 난초에 탁사(託辭)

하였던 것이다. 《금조 琴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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